서울여행

길상사의 만추

나비야 날아라 2013. 11. 13. 12:08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 2동

어떻게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출구로 나가 

길상사 이정표를 따라 천천히 걸어 30여분 후에는 길상사 입구에 도착 

 

길상사가 원래는

삼청각,청운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으로 꼽혔던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다. 

1987년 공덕주 길상화(법명)김영한님이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스님을 친견 한 뒤, 당시 싯가 1000억원이

넘는 음식점이던 대원각을 시주하겠으니 청정한 불도량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였다. 1995년 법정스님이 그뜻을 받아 들이셔서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을 하고 주지에 현문스님이 취임 했다.

1997년에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등록 했다.

 

 

 

 

 

 

 

 

 

 

 

 

 

 

 

 

 

 

 

 

 

 

 

 

 

 

 

 

 

 

 

 

 

 

 

 

 

 

 

 

 

 

 

 

 

 

 

 

 

 

 

 

 

 

 

 

 

 

 

 

 

  김영한님이 22살 한참 피어나는 꽃봉오리 처럼 아름다울때

그녀에게 첫사랑이자 평생의 연인 백석(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문학과를

졸업한 인재이자 촉망받던 시인)을 만나 둘은 첫눈에 반했다. 아니 백석이 그녀에게 푹 빠졌다.

"이제부터 당신은 평생 나의 마누라야! " 스물둘의 진향에게 굳게 약속했다.

기생 진향에겐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백석은 중국 전설속 여인의 이름을 따 그녀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붙혀주었다. 서울에서 함께 한 2~3년간의 시간, 두사람의 사랑은 날로 깊어졌다.

그러나 기생의 신분으로 부부가 될수가 없었다. 부모의 반대를 이길 수 없었던 백석은 "

모든것을 버리고 떠나자고 했다. 그러나 자야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창창한 앞날에

짐이 되기는 싫었다. 백석은 자야를 설득하지 못한 채 만주로 떠났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연락이 끊어진 채 생사조차 알길이 없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갈라지면서 두사람은 말 그대로 영원한 이별을 맞았다. 

 

사업가이던 시절에는 김숙이란 이름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김영한님은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1997년 12월 14일 법정스님으로 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만 받고 절터와 전각을 모두 보시하고 길상사가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그녀는 수천의 대중 앞에서 "저는 죄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입니다."

 

법정스님(1932년 음력 10월 8일~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 불교 승려이자 수필가이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해 왔다.

1954년에 승려인 효봉의 제자로 출가 하였고, 1971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다.

2010년 3월 11일에 서울시 성북구 성북 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였다.

 

"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 무소유의 의미입니다.(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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