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유년기

나비야 날아라 2021. 12. 10. 15:15

 

세상에 태어나 어린시절 최초의 기억은 내가 다섯살때 가을에 우리집 마루에서 앞집에 살고 있던 친구 문철이와 나무에 종이를 붙여 만든 태극기를 하나씩 들고 양쪽 끝에 서서 마주 달리며 "태국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를 부르면서 신나게 놀고있는데 방에서 느닷없이 "응애 응애" 울고있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철이는 "너희집에 아기가 있니?" 하고 물으니까 내가 "우리 애기 사왔어!" 하고 상상을 말했다. 그날 오후에 고등학생이던 오빠가 학교에 갔다 돌아와서 책가방을 둥근 나무상에 내려놓자 마자 나는 "오빠! 우리집에 애기 사왔다!" 하고 말했더니 교모에 교복을 입은 오빠는 "그래 얼마주고 사왔는데?" 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내가 아는 최고의 많은 돈인 "오백환" 이라고 말했다. 그후로 내동생은 500원짜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 일곱살때에는 엄마와 큰언니가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때 큰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온 아주머니가 " 배 사이소 내배사이소 배가 아주 꿀같이 답니더" 그러자 평소에 과일중에 배를 가장 좋아하던 내가 엄마한테 배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사줄 기미가 보이지않자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다리를 비비며 울기 시작했으나 우는걸 말리지도 않고 이야기만 하고 계셨다. 배장사는 이미 가버리고 울음을 멈추고 싶었으나 "내버려둬 울다 지치면 말겠지" 하고 달래주지를 않으셨다. 울 명분도 없는데 그치지를 못하고 한없이 울다 쉬다를 반복하며 오랫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때에 아침잠이 많아 학교에 갈때마다 아버지가 깨우시던 일이 잦았는데 화 한번 내시지 않고 곤히 자던 딸을 깨우기가 안쓰러우셨는지 내가 자고 있던 요에다 둘둘 말아 방문을 열고 내다 버리는 시늉을 하시면서 " 늑대야 너나 물어가거라!" 라고 외치시니 그제야 잠에서 깨어나 부라부랴 밥먹고 학교에 갔다.

 

어느날인가는 산에 가셨다가 잣을 주워오셔서 일일이 까서 주시며 "우리 막내딸 많이 먹고 더 이뻐지거라" 하셨다.

 

한번은 아버지를 따라 소요산계곡에 갔었는데 돌맹이를 들쳐내어 가재를 많이 잡으셨다. 집에 돌아와서 구워 주셨는데 그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있다. 한번도 꾸중을 듣거나 맞아본적도 없이 귀여움과 사랑만 받고 커서 어렸던 시절이 생각나면 아버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 시절이 그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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